손끝에서 

피어나는 감각

"지금 이 순간,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 

나홀로 살아가는 작은 원룸에 TV소리가 아닌 물줄기 소리가 졸졸졸 들리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정갈하게 주변을 정돈하고 다판을 준비한다. 그리고 천천히 끓어 오른 물로 다관(차 주전자)와 잔을 데우고, 차를 한번 씻어 낸다. 그리고 적당한 온도에 차를 우려 호로록 마신다. 티백을 컵에 담궈 차를 마시는 일이 백배 편리한 일이지만, 이렇게 정성을 다해 차를 마시고 나면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잔을 감싸쥐고 있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괜찮다 잘 하고 있다라고 보듬아 주는 것 같았다. 손 안에 폭 들어오는 작은 찻 잔일 뿐이데 그것에는 자연의 위로가 담겨있었다. 이렇게 흙을 만져본 일이 언제던가? 


소꿉놀이. 작은 다구를 만지다 보면 어린 시절 소꿉놀이가 떠올랐다. 흙만 있으면 그곳은 최고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 순간만큼 나는 자상한 엄마가 될 수도, 씨를 뿌리는 농부가 되기도,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지금의 나를 자유롭게 했다.




처음 무릉을 시작할 때만해도 수색이 보이는 유리 숙우를 사용했다. 통일감도 있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도자기 숙우까지 준비한 이유는 대지의 온기를 전하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흙으로부터 오는 평온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각자 다른 에너지를 갖고 있다. 손끝으로 자분히 찻잔을 돌려본다. 그러면 나의 온도 때문인지, 찻잔의 온도 때문인지 마음이 평온하다. 뜨겁게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손끝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잘 살아가고 있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