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차밭, 

한국의 떼루아

" 맑고 순수한 맛이 나는 건, 차밭에 아무것도 치지 않아서에요."

 

떼루아 terroir 란 ? 


프랑스어로 "토지","토양", 또는 "풍토"를 의미한다. 주로 와인에서 포도가 자라는데 영향을 주는 지리, 기후, 재배법 등의 상호작용을 모두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차에서도 떼루아는 차의 특성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인이된다. 


하동 쌍계사를 따라

야생 차 생산지

하동 녹차 하면 '야생 '의 맛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봄 남쪽 지방(하동, 구례)를 여행한 이유는 야생 차밭을 보고싶어서였다. 하동의 차밭은 지리산 쌍계사를 따라 천년 동안 차나무가 자생한 지역이다. 


높은 산 비탈을 따라 야생 차 밭이 펼쳐져 있다. 거친 산세는 차가 자라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만들었다. 하동에서 와서 놀란 것은 한 집 걸러 한 집 차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 계절에 맞는 농작물과 같이 때가 되면 봄이 오면 찻잎을 따서 일년 내내 마실 차를 준비해 놓는 것 이다. 그저 모두에게 차는 일상이고 삶의 한 부분 이었다.


맑고 깨끗하다. 하동에서 만난 붓당골 김종렬 선생님의 차맛은 군더더기 없이 투명했다. 떼루아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맛에서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생산성 만을 생각한다면 비료도 좀 주고, 농약도 좀 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는 자연이 주는 그대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차를 만드는 것을 고집한다. 정통으로 차를 배운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부산에서 사회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 결혼 후 번뜩 차를 만들기 위해 고향 하동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동네 어르신들의 귀동냥으로 차를 배웠다. 처음에는 불 온도를 조절하는 법을 몰라 우전잎을 홀라당 태워 먹었다. 


일정한 차 맛을 내기 위해 정말 오랜시간의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그의 손을 통해 한국 차 밭에서 홍차, 청차도 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제다법을 개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에게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땅이다. 마시고 난 뒤에도 깊은 여운을 주는 것은 자연그대로의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향과 맛이 아닌 담담하고 진솔한 차의 맛. 누군가는 차를 기호식품으로 여길 수 있지만, 차를 마시는 것이란 자연을 내 안으로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붓당골의 차는 그래서 더욱 가치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구례 우리 땅 첫 

차 시배지 

지리산과 섬진강을 경계로 우리 땅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나뉜다. 경상남도 하동에는 쌍계사가, 전라북도 구례에는 화엄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사찰을 중심으로 차 시배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등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 3년 대렴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차종자를 지리산에 심게되었다.는 기록때문이다. 여기서 지리산이라는 지역이 정확하게 명기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흥덕왕 3년이면 쌍계사가 재건되기도 전이라는 것이 차 시배지에 대한 논란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처음 만들어진 차밭이 무엇이 중요할까. 그저 신기한건 같은 산 자락에서, 같은 물 줄기에서 뻗어 나온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지형과 문화가 전혀 다르다는 것 이었다. 더욱이 차의 맛은 결국 만드는 이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에서 한국 차의 위상은 아직까지는 미미하다. 그러나 천년 역사의 명맥을 이어온 문화라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차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직접 제다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난다. 험난한 산 비탈을 비집고 올라 어린 녹차잎을 따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다. 그 녹차를 이고지고 내려와 말리고, 뜨거운 가마솥에서 직접 손으로 덖고, 그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야 차가 완성된다. 하동과 구례에 위치한 생산자들은 하나같이 전통의 가업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차를 만들어 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장인이라 일컫는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장인정신이 없다면 결코 대를 이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떼루아, 무엇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그 토양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잘 가꾸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자가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더욱이 자연이 주는 만큼 만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도시에서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