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차가 필요한 순간
차를 마신다. 간단한 일 같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 '잎 차는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에게 차를 마시는 일은 일상적이다. 맛있는 식당에 가면 그 집 보리차 맛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는(한국인) 차를 물 처럼 즐겨 마신다. 그만큼 친숙하지만 막상 차를 마시려고 하면 준비할 것이 많다. 티백으로 차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차를 마신다는 것은 찻잔에 넘실거리는 찻잎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포함하는 것이니 -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한 건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쯤 갖고 있던 취미 덕분이다. 당시 커리어 우먼이었던 엄마의 취미는 '다례'였다. 언제나 바쁜 엄마는 주말이면 차 공부를 하고 와서 나와 동생을 앞에 앉혀두고 차를 우려주셨다. 어린 나에게는 엄마가 왜 세심하게 물 온도를 손으로 체크하는지, 차를 나무 그릇(다하)에 담아 두는지, 한 번에 차를 따르지 않고 세 번에 나누어 주는지 등의 절차와 예절은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모든 과정이 엄마와 하는 소꿉놀이 같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엄마에게 '다례'는 숨 쉴 구멍이었다. 일터에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고, 가정에서는 우리를 잘 양육해야 했다. 어쩌면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었던 엄마에게 차를 마시는 시간은 유일한 자기 돌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나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열아홉 대입 실기시험을 끝내고 엄마 손에 이끌려 전통다례예절원에 가게 되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아주머니들과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마냥 재미있지는 않았다.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모두가 새로운 변화(메타버스와 NFT가 넥스트 비전이라고 믿던)에 올라타야 한다는 욕망이 가득하던 시절, 집 근처에서 진행되었던 <고원>이라는 명상 전시에 갔다. 소리 명상을 끝낸 후 나 홀로 찻자리를 마주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그저 이 땅 위에 두발 딛고 살아가고 싶은데 - 참 그렇게 살아가기가 힘들다.' 싶었다.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퇴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무방비 상태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고 싶은 명확한 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는 해야만 했다. 내일 출근 해야 할 곳이 갑자기 사라지자 나의 쓸모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차 명상을 시작했다. '과거에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좋았어, 그러니 매일 차를 마셔야지' 라는 흐름은 아니었다. 우연히 들어간 찻집에서 구입한 차 도구 때문이었다. 호리호리한 항아리의 곡선을 닮은 타카노 에리 작가님의 다관을 보자마자 큰 위안이 되었다. 다행히 집에는 엄마가 보내준 백차와 녹차가 있어 자연스럽게 차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15분이면 충분하다.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고, 깊은 호흡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은- 그리고 아침이 달라졌다. 눈을 뜨자마자 정신없이 출근 준비로 우당탕했던 순간에 고요함이 깃들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알았다. 채우는 것에 급급했던 날이었구나. 남들보다 뒤쳐 질까봐 트렌드를 쫓아 움직였고, 모든 배움에 빠지지 않았고,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잔뜩 움켜쥐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길을 잃었다. 회사 프로젝트의 왜(why)는 잘 만들면서 내 인생의 왜는 왜 놓치고 살았던 것일까?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빈틈을 내어주며 오늘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과거 지금 내 나이 즈음의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